엠마우스 가는 길
헨리 나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관대함 본문
내 마음의 지도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을 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이 어디메쯤 가고 있는지 보인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그 마음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가부좌 틀고 장궤에 앉아서 침잠에서야 어거지 그려지는 내 마음이다. 어쩜 이다지 또렷할까.
자꾸 떠나는 작은 아들 안에 있는 마음에는 나의 무질서한 애착이 보인다. 완고하게 움켜쥔 큰아들의 손에 나의 마음이 잡힌다. 이젠 기다리다 지쳐 눈까지 먼 아버지가 삐뚤어진 아들을 껴안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환영 모습에서 나의 마음이 관대함을 만난다. 그분을 뵙는다.
THE RETURN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매순간 어쩌면 우리들이 집으로, 영으로 가는 길이다. 그 속에서 숨어계시는 그 분을 뵙는다. 귀환. 귀향, 귀휴는 떼아르 드 샤르댕이 말한 영혼의 여정이 아니라 인간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가는 길이다.
무분별한 열망 - 뿌리치다
날이 저물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덩치 큰 못난 아들이 있다. 그는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살아왔다. '조금만 가면 된다' '조금만' 하며 자기를 채근해왔다. 그의 거친 무분별한 열망이 그를 계속해서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끝없는 귀환(흐느낌)으로 연결된다.
옹졸함 - 움켜쥐다
더이상 할 수 없다. 이제까지 온 게 힘겨웠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 군살 배고 굳은 손을 어찌할 수 없다. 왜 나는 관대해지지 않은가.
왜 용서할 수 없는가. 왜 나는 사람을 환대할 수 없는가. 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 일 수 없는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옹졸한 내 모습이다.
자비로움 - 껴안다
삐뚤어진 아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대문에서 서성인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멀리 멀리 보다 이제는 가까운 곳이 보이지 않는다. 힘쓸 수 없는 노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인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고, 앞으로도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다. 노인, 기윽코 대문 밖 마을 어귀에 서성인다.
결국 탕자의 귀환은 무분별한 애착의 작은 아들이 돌아옴이 아니라,
큰아들의 옹졸함에서 받아들여짐 아니라
사랑 안에서만 계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움이고 애착과 옹졸함을 넘는 관대함이다.
주세페 드 리베라 속의 노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늘 밤에는 집에 있을 건가요'
불현듯 내 마지막 열망은 집으로 돌아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집에 머물면서 돌아오는 이들을 반가이 맞아주는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와줘서 기쁘구나.
정말 기쁘다!
다들 서둘러라.
가장 멋진 옷을 꺼내오너라.
.....
네가 마침내 돌아왔으니 한바탕 잔치를 벌여보자꾸나!"
헨리 나우웬
THE RETURN OF PRODIGAL SON ANNIVERSARY EDITION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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