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엠마우스 가는 길/집으로 가는 길동무 (11)
엠마우스 가는 길
오랜만에 당신에게 띄웁니다. 노동자로 살면서 겪게 되는 해고입니다. 삶의 줄이 끊어졌을 때입니다. 종교의 좋은 점은 서 있기조차 힘에 부칠 때 아둥바둥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삶을 내동댕이치면서 자기를 토닥거리는 자기 수용입니다. 자기 받아들임입니다. 그래야 다리에 힘이 생겨 자기를 내맡기게 됩니다. 루오의 길은 '미세레레'입니다. 헨리 나웬의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관대함'입니다. 베네딕도가 가는 길은 '정주,정진,순명'입니다. 미쓰하라 유리의 길은 '아득함'이고 '비탈'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길은 '단순함'입니다. 아! 바베의 길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80년 사람의 길, 생명의 길은 '민주'입니다. E.H CARR의 길은 '해석된 사실'입니다. 윌리엄 제임스의 길은 '자기 내면'입니다. 맑스의 길은..

헬멧과 안전화만이 그를 지켜주는 유일한 안전망입니다. 머리 위로 쉴새없이 철근 덩어리를 여러 대의 호이스트 크레인들이 실어서 작업대에 옮깁니다. 하지만 크레인이 잘못되는 날에는 그 아래에서 철근 가공하는 노동자의 목숨은 없는 셈입니다. 무쇠를 단숨에 휘게 하는 강철 노동자입니다. 젊었을 때 그렇게 되고 싶던, 세상을 가공하고 싶은 그 철의 노동자입니다. 늙어서 이제 가진 건 최저 시급으로 판매할 제 몸뚱아리밖에 없는, 세상 대신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무쇠만 휘는 노동자입니다. 그조차 느릿느릿하고 튼실하지 못한 늙은 노동자입니다. 잔업이 있는 날은 늦은 밤까지 몸이 어스지도록 철근을 가공합니다. 공단에는 쉬이 불이 꺼지지 않지만 노동자는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냅니다. 퇴근하면 비로소 임금 노예에서 벗어나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22살 청년은 불타는 몸으로 절규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법 11조를 개정하라.'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하라.'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50년이 지난 2020년 가을, 22살 청년의 이름을 다시 부르짖는다. 왜 왜 다시 전태일까. 50년 전 전태일 노동자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우리의 일터는 달라지지 않았다. 난 한겨레21의 '2020 전태일의 일기'를 읽으며 가슴이 저미다 무언가 울분이 끓어올랐다. 나는 벌써 우쪽으로 한참 걸음을 ..
공장 다니면서 으레 입사 연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게 서열이니까요. 연수가 짧은 신입들은 고참이 일할 수 있게 매사에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신입이 대표적으로 하는 허드렛일은 쓰레기 치우기입니다. 먼저 종이 박스를 쌓습니다. 빠렛트 위에 10-20kg 포장 종이 박스 네 개를 바닥에 쫘악 편 다음 키 높이까지 쌓니다. 관건은 쓰러지지 않도록 각을 맞추는 겁니다 .중간 중간에 일정하게 종이 지렛대를 만들어 평형을 잡아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태이프로 묶어주면 됩니다. 다른 빠렛트엔 깡통과 플라스틱 통을 가지런히 쌉니다. 이건 지그재그로 포개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1단이 끝나면 테이프로 쭉 둘러서 서로를 꽉악 결착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빠렛트에 이건 무거운 놈을 ..
세월이 흘러갔네요. 10년이 넘어서야 당신을 보게 되었지요. 당신은 거기 있는데 난 여러 바퀴를 돌고 돌았답니다. 이젠 공장에 노동자로 일한지 벌써 4년이 됩니다. 처음에는 파견 계약직, 두번째는 일용직, 세번째는 정규직입니다. 무엇보다 최소 시급으로 최저 생계비를 받습니다. 임금 노동자입니다. 당신은 실소를 하겠지만 사실 제가 되고 싶은 게 농부 보다는 노동자였습니다. 사고팔리지 않는 삶을 찾아 산으로 갔던 농투성이 임금 노예의 세상에 다시 돌아 노동자 계급에 편입되었습니다. 일은 주야 맞교대로 하루 10시간을 달립니다. 그야말로 언제나 누구와도 대체가 가능한 단순 숙련 노동입니다. . 나이가 많으니 일할 데가 막일 같은 공장밖에 없지요. 공장일은 단순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힘듭니다. 그래도 일하면..